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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불의 기사 2024. 4. 17. 10:56

     

     지우스는 오늘도 어김없이 불쾌한 기상을 했다. 손가락 끝까지 두려움으로 얼어붙는 기분. 마치 가위에라도 눌린 듯이 손가락이 굳어서 잘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떴음에도 친숙한 자기 방이 눈에 재깍 들어오지 않았다. 꿈속의 끔찍한 광경이 아직도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지우스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기를 두 번 반복했다. 그러고는 비틀거리며 책상에 앉아 회백발 여자가 돌려준 꿈 일기장을 꺼냈다. 볼펜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피도란스가 많이 다쳤어.

     정확히는 꿈에 나온, 피도란스를 닮은 사람이겠지만. 지우스가 펜을 내려놓고 한숨을 길게 쉬었다. 꿈속에 나온 피도란스는 커다란 대검을 들고 마치 사신 같은 형상을 한 자와 싸우고 있었다. 눈으로 따라가기도 벅찰 만큼 격한 접전 끝에, 사신이 들고 있던 창이 피도란스의 몸을 관통했다. 지우스는 그것을 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피도란스와 같이 있던, 투구를 쓴 사람이 쓰러진 피도란스를 흔들어 깨우려고 하는 광경이었다. 피도란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우스는 쉴 새 없이 움직이던 펜을 겨우 내려놓았다. 꿈 일기는 일어난 직후에 바로 쓰지 않으면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이만큼 쓸 수 있게 된 것도 몇 달간 계속된 연습 때문이었다. 이걸 기록해서 어디에 쓰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지우스가 꿈 일기장을 앞으로 몇 장 넘겨보았다. 죄다 끔찍한 내용뿐이었다. 누가 다쳤고, 누가 죽을 뻔했고, 누구랑 누가 싸웠고... 일상 속 말다툼조차도 가능한 피하고 싶어 하는 지우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꿈들이었다. 꿈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얼굴들이었다. 언젠가는 파디얀이 죽을 뻔했고, 또 언젠가는 루디카가 다쳤다. 그중에서도... 지우스는 공책 한편에 끄적여둔 이름을 바라보았다.

     나견.
     언젠가 그에게 이사 선물이랍시고 자미떡 두 상자를 안겨준 제자의 이름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아, 네. 안녕하세요.”

     지우스가 출근하기 전, 점심을 먹으러 온 곳은 학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 식당이었다. 늘 근처에서 대충 해결하다 보니 지금껏 올 일이 없었지만, 제자인 나견 녀석이 언젠가 한 번쯤 놀러 오시라고 말했던 곳이라 와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식당은 나견의 보호자 역할을 맡고 있는 해진 삼촌이 운영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식당 일을 하신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지우스가 식당 주인보다는 장군을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은 해진 삼촌을 보며 무뚝뚝한 표정 위로 사회성을 덧발랐다. 지우스가 수저를 놓는 동안 물을 떠 온 나견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인상이 좀 무섭긴 하죠.”
     “...조금?”
     “그래도 좋은 분이세요, 우리 삼촌.”

     하긴, 좋은 사람이니 이 녀석도 이렇게 바르게 클 수 있었던 거겠지. 지우스가 버릇처럼 식탁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다가, 나견이 물을 마시고 막 내려놓는 타이밍에 말을 꺼냈다.

     “견, 선생님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할 생각 있나?”
     “무슨 알바죠?”
     “자습실 조교랑 보조 강사. 할 만할 거야. 너라면 잘할 수 있겠지.”
     “...혹시 꼭 제가 해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달잔 선생님이 주변에 괜찮은 사람 있냐고 물어보시길래 내가 덜컥 그렇다고 해버렸거든.”

     그 말에 나견이 어이가 날아간 얼굴로 지우스를 바라보았다. 종종 지우스가 일을 일단 벌려 놓고 통보하는 경향이 있다는 건 나견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졸업하고 나서도 또... 안그래도 학원에 다니는 내내 지우스가 나견을 자기 일꾼으로 삼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눈에 안 띄려고 혼자 조용히 공부만 했건만.

     “맛있게 드십시오.”

     마침 해진 삼촌이 음식을 쟁반에 담아서 오시기에, 나견과 지우스는 서로를 노려보기를 멈추고 반사적으로 방긋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필 식당에 손님이 없었던 탓에, 옆자리에 덜컥 앉아버린 해진 삼촌과의 스몰 토크가 시작된 건 덤이었다. 네, 네... 하하, 견이 이 녀석이 학원 다닐 때 진짜 똑똑했죠... 네, 아주 최고의 학생. 완전 최고. (3분이 지나자, 표정 짓는 데 익숙지 않은 지우스의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대부분 나견에 대한 칭찬으로 이루어진 이야기가 끝나고 해진 삼촌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나견이 조용히 양손을 올려 약하게 박수를 쳤다.

     “...무슨 의미지, 그 박수.”
     “존경스러워서요. 여러 의미로.”
     “아무튼, 부탁 좀 하자. 밥 사줄 테니까.”
     “이미 저한테 밥 사준다고 말씀하신 것만 열 번이 넘으십니다.”
     “나는 한 번 뱉은 말을 안 지키는 사람은 아니야. 정확히 몇 번이지?”
     “방금 것까지 하면 총 열세 번이요.”
     “...좋다. 총 열세 번 사주도록 하지. 부디 얻어먹을 때도 헷갈리지 않게 숫자 잘 세도록 해라.”

     나견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우스는 입맛이 없어 음식을 조금 깨작거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수저를 놓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견과 눈이 마주쳤다. 나견이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밥 얻어먹는 횟수 한 번 차감하는 대신 질문권 하나 구매 가능한가요?”
     “질문 정도는 그냥 받아줄 수 있어. 선생이잖아.”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혹시 저를 학원으로 부르시는 이유가 시간을 들여서 저와 의논하고 싶은 사항이 있어서인가요?”

     지우스는 말문이 막혔다. 이 자식, 눈치가 빠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나견은 지우스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의논하기 가장 좋은 상대였다. 그러나 다짜고짜 전생이니 평행우주니 하는 말을 지껄일 수는 없으니까 곁에 두고 천천히 간을 보려고 한 건데. 지우스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어떻게 알았지?”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 위해 일단 근처로 부르시는 게 선생님의 주된 패턴이었으니까요.”
     “차라리 잘 됐군. 너와 의논하고 싶은 게 있다. 긴 이야기가 될 거야. 그래도 괜찮나?”
     “밥 먹으면서 천천히 들으면 되지 않을까요? 기회도 열세 번이나 있는데.”
     “...그래. 열세 번 동안 천천히 의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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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합니다(두괄식 구성)

    이제 에필로그 포함 3편 남았는데... 머리에 스토리는 있는데 도저히 정리가 안됨요.

    사실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시작된 시리즈라 여기까지 온 것도 용합니다.

    이렇게 많이 봐주실 줄 알았다면 이 정도로 대책없이 시작 안했을겁니다...(감사하다는뜻)

    그래도 아주 영영 내던질 생각까지는 아니고,

    다른 장편도 좀 쓰고 하면서 이 시리즈를 끝낼 자신이 생기면 끝내러 돌아올게요.

    지금은 도저히 .. . . . . .넵

    지금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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