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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디루디
    잔불의 기사 2024. 7. 19. 16:39

     

     맛있는 음식들이 정갈하게 담겨 나왔다. 손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식기들과 테이블. 구석에 있는 소금 통조차도 고급스러워 보인다. 루디카는 삐딱한 태도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저렇게 무방비로 놓인 소금 통을 보면 확 엎어버리고 싶은 유치한 충동이 든다.

     파티에 참석한 교양 있는 사람들은 목소리를 적당한 크기로 조절할 줄 알았다. 파티장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보다는 크게, 하지만 귀에 거슬리지는 않을 만큼 작게. 그런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모여 듣기 싫지 않은 수준의 소음이 만들어졌다. 아무래도 오늘 참석한 이들 중에 기사라고는 루디카 혼자뿐인 듯했다. 기사가 한두 명이라도 더 있었다면 이런 얌전한 분위기는 유지되지 못했을 테지. 

     애초에 여길 왜 왔더라. 초대를 받긴 했지만, 꼭 와야 하는 자리는 아니었는데. 루디카는 이렇게 격식에 환장한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동료들 사이에 둘러앉아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오히려 그런 게 즐거운 파티겠지. 루디카는 시계를 보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잠깐 나가서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고 올 생각이었다. 잘하면 이 기회를 틈타 슬쩍 빠져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발코니로 나가려는데 누군가가 다짜고짜 어깨를 툭 쳤다. 

     “그러고 나가면 얼어 죽을 텐데?”

     아주 잠깐이지만, 자신에 대한 살인예고 비슷한 것으로 알아들은 루디카가 경계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항상 풀어 내리고 다니던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틀어 올려 묶은 파디얀이 서 있었다. 하늘을 닮은 파디얀의 드레스 색이 그의 눈 색깔을 연상시켰다.

     “밖에 추워, 루디.”

     그러고는 꽤 따뜻해 보이는 카디건을 하나 내밀었다. 아무리 봐도 루디카의 취향에는 들어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디자인이었다. 이걸 입으라고? 세상에 이런 게 어울리는 사람도 있나 싶었지만, 왠지 파디얀에게는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했다.

     “...나, 추위 잘 안 타.”

     추위를 안 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기사들이란 전투에 필요한 감각은 예민하게 갈고 닦으면서도 전투에 불필요한 감각은 얼마든지 둔하게 만들 수 있는 초인들이었으니까. 루디카는 물론, 다른 기사들 역시 웬만한 추위나 더위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러나 파디얀 역시 초인이었다. 파디얀이 춥다고 말한 날씨는... 정말로 춥다는 뜻이었다. 하필이면 입고 있는 드레스도 얇은 재질이다 보니, 곧 피부에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

     “으이구, 내가 널 모르는 것도 아니고.”

     파디얀이 옆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곧 허전하던 어깨 위로 카디건이 툭 내려앉는 것을, 루디카는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 루디카에게 카디건을 걸쳐 주고 무언가 망설이는 듯, 카디건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살짝 머뭇거리던 파디얀이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어쩐지, 루디카는 두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갑자기 질문이 치고 들어왔다.

     “파티 재밌어?”

     루디카가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한 대답은 그게 아니었지만, 파디얀도 별로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닌 듯했다. 파디얀이 말을 이었다.

     “너무 조용해서 재미없지 않아? 난 조금 더 떠들썩한 분위기가 좋더라.”

     루디카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동의했다. 한편으로는 파디얀의 말에 계속 대꾸를 하지 않으면 혼자서라도 대화를 계속 이어가려 할까 하는, 조금 짓궂은 의문도 들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기린은 아까 있었는데 어딜 갔나 몰라. 지가 끌고 왔으면서.”

     그것도 그렇지. 이번에도 속으로만 고개를 끄덕였다. 루디카는 이 미묘한 대화가 마무리되기를 바라는지, 계속되기를 바라는지 스스로도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파디얀이 만약 말을 멈추고 혼자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그건 좀 서운할 것 같기는 했다.

     “조금 빠른 음악이 듣고 싶네. 우리가 같이 춤출 수 있는...”
     “같이 한 곡 출래?”

    아.

     눈 마주쳤다.

     “기꺼이.”

     파디얀은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루디카는 눈앞으로 내밀어진 손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 위에 굳은살이 박인 손을 얹었다. 손이 얼어서 감각이 잘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루디카는 파디얀의 손도 자신의 손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전혀 취향이 아닌 파티에서, 전혀 취향이 아닌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춰 본 일이 없는 두 사람이라 춤 자체는 아주 엉망이었지만, 두 사람은 그럭저럭 잘 어울리는 파트너로 보였다. 아마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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