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냥기린
승냥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기린이 눈치챈 것은 거의 우연이었다. 매번 괜찮아, 괜찮아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니 역으로 괜찮지 않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안 괜찮을 줄은 몰랐는데... 기린이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정신없는 상황이었다지만, 동료의 상태가 이렇게 나쁜데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이건 명백한 불찰―
“네가 이렇게 된 건 내 불찰이고 능력 부족이다. 모두 내 책임이야―”
“...장난칠 때가 아냐, 승냥이.”
“꽤 비슷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어차피 저렇게 말할 생각 아니었어? 기린.”
본래의 색을 잃은 붕대가 바닥으로 하늘하늘 떨어졌다. 복부를 감고 있던 붕대를 풀어헤친 승냥이가 새로운 붕대를 집어 들었다. 고작 그 정도 움직였음에도 입가에서 흐르기 시작한 피는 승냥이의 부상이 보통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었다.
“지시를 내릴 게 아니라면 잠깐 나가주지 않겠어? 나 이거 마저 처치해야 하는데.”
“적어도, 내가 도울 수 있게는 해줘.”
“하여튼 쓸데없이 죄책감 갖기는... 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나야 고맙지. 부탁한다.”
승냥이의 부상을 가까이에서 살펴본 기린은 한숨이 터져 나오는 걸 굳이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승냥이가 뻘쭘한 듯이 먼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봤자 방 안의 천장 한구석이 가장 멀었지만. 승냥이의 부상은 한 번의 전투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적어도 서너 번의 전투를 겪으면서 쌓인 자잘한 부상들. 그리고 이전에 입은 부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대미지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이미 속까지 만신창이였다.
“내상인가? 얼마나 심각하지?”
“글쎄? 걱정 마. 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야. 만약의 상황에서 견습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건 승냥이 너뿐이다. 너도 그 역할의 중요성을 알고 있겠지.”
특수 2기, 지금부터 내 지시를 따른다. 부상자를 챙겨서 모두 퇴각해. 기린, 애들을 부탁한다.
걱정 마, 괜찮으니까.
“너야말로 지휘관의 역할을 잊은 건 아니겠지, 지우스. 아군 측에서 희생이 날 수밖에 없다면, 가장 우선으로 지켜야 할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 나는 애들만 지키려고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냐. 내 역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정도 부상 가지고 너한테 잔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는 없어.”
“...피도란스.”
“나머지는 내가 할 수 있어. 고맙다. 너도 가서 눈 좀 붙여. 며칠간 한숨도 못 잔 거 알고 있으니까.”
거의 쫓겨나듯이 방을 나오면서(승냥이는 가볍게 미는 듯했지만, 기린은 속절없이 밀려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기린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한 이마를 짚었다. 저 녀석, 아까 말할 때 코와 입에서 또 출혈이... 지금쯤 피를 닦느라 정신없을 터였다. 이 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동료가 길을 걷는 것을 말릴 수 없는 게 지휘관의 역할이라니.
지우스는 한동안 양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방 앞을 떠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