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불의 기사

기사들 현대au (2)

약님 2024. 4. 2. 14:36

 

 2월은 여러 의미로 정신없는 시기다.

 [선생님, 애들한테 연락 돌려 봤는데 율니아랑 마르샤도 다 합격했대요. 조만간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찾아뵐까 하는데 괜찮으세요?]

 오랜만에 핸드폰이 여러 번 울려서 봤더니 제자들에게서 온 문자였다. 아마 이 순간이 학원 선생님으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일 것이다. 덕분에 합격했다는 제자들의 감사 인사를 받을 때. 지우스가 핸드폰 액정을 톡톡 두드려서 메시지에 적당한 답을 보냈다.

 [선물은 무슨. 나중에 선생님이 밥이나 한 끼 사줄게.] 

 답장을 보내고 나서야 수신자명이 눈에 띄었다. ‘2반 나견’. 유난히 똑똑한 녀석이었지. 평소에는 가장 말 잘 듣고 잘 따라주면서도 중요할 때는 뚝심 있게 행동하던... 지우스가 잠이 덜 깬 상태로 피식 웃었다. 요새 꿈자리가 나빠서 잠을 자도 늘 피곤했는데, 제자들의 문자 세례에 피로가 다 달아나 버렸다. 마침 ‘아침 알람’이 울릴 시간도 다 됐다.

 와잣―쵸―!!!

 이사 온 지 3일째, 아침마다 아랫집에서 저 정체불명의 기합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아침 내내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적절한 때에 잠을 깨워 주기도 해서 슬슬 알람으로 활용하는 중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기합을 지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뭐. 아랫집에 무협지를 좋아하는 이웃이라도 사나 보지. 어쨌든 알람(?)도 울렸으니 이제 슬슬 일어날 시간이었다. 오늘은 일 때문에 밀린 짐 정리를 끝내고 대청소를 할 계획이었으니까. 지우스는 핸드폰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씻으러 들어갔고, 그 덕에 곧 핸드폰에 도착한 메시지를 보지 못했다.

 [이미 선물 샀는데 어쩌죠, 선생님. - 2반 나견]





 “...이게 뭐니.”
 “선물... 떡이요.”
 “...쑥떡?”
 “자미떡이라고...”
 “갑자기 웬 떡...?”
 “새집으로 이사도 하셨으니까, 이웃분들과 나눠 드시라고...”
 “...누구 아이디어니.”
 “...해진 삼촌이요.”

 도대체 내 인간 됨됨이 어디에서 이웃들과 화목하게 떡을 나눠 먹는 모습을 상상했단 말이냐, 견아. 가족 같은 삼촌이 낸 아이디어라니까 뭐라 할 수도 없고... 지우스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그도 그럴 게, 나견이 들고 온 떡은 두 상자나 되기 때문이었다. 허약한 녀석이 이걸 다 들고 온 것도 어떻게 한 건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다들 돈 조금씩 모아서 산 거예요.”

 와잣―쵸―!!!

 “율니아는 눌진이랑 약속이 있고, 마르샤도 바쁘다고 해서 같이 못 왔지만...”

 흐리얍―!!!

 “...다같이 우르르 오는 건 또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제가 대표로...”

 으랏―차―!!!

 “...기운이 넘치는 이웃이네요.”
 “...어, 오늘따라 유독 기운차시네. 아무튼 고맙다, 견아. 잘 먹을게. 양을 보니까 1년도 더 넘게 먹을 수 있겠다.”
 “유통기한 잘 확인하고 드세요. 1년까지는 안 될 거예요.”
 “...그래.”

 나견이 예의 바르게 꾸벅 인사까지 하고 돌아가자, 지우스는 그제야 한이 담긴 한숨을 시원하게 제대로 내쉴 수 있었다. 이 못 말리는 제자 녀석들 같으니. 아마 그 해진 삼촌이란 사람이 낸 아이디어란 그냥 ‘이사하셨다니까 떡 선물은 어떻겠니’ 정도였을 것이다. 그 가벼운 충고 한마디와, 혼자 사는 청년에게 커다란 떡 상자 두 개를 한가득 안겨준 제자들의 행동 사이에는 크나큰 간격이 있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시련이? 

 와잣쵸―!!!

 그러나 아랫집은 지우스가 조용히 사색하는 것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지우스가 이마를 짚고 있지 않은 다른 한쪽 손으로 바닥을 툭툭 두들겼다. 곧이어 아랫집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헉! 어어... 죄송합니다!! 너무 시끄러웠죠!! 

 피도란스의 말대로, 방음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안 되는 집이 맞는 것 같다. 지우스는 떡 두 상자와 한참 눈싸움을 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서로 얼굴도 모른다는 삭막한 21세기 현대 사회. 새로 이사 왔다고 떡 좀 돌리는 게 현대 사회에서 그렇게까지 이상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겠지.

 흐리―얍―!!!

 ...일단, 아랫집부터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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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호: 지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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