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불의 기사

특수 2기가 어려졌다 (下)

약님 2024. 5. 5. 14:23

 

 지난 이야기 요약: 수상한 마법의 물통에 담긴 물을 마시고 다섯 살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다랑과 피도란스, 루디카. 새까만 닭의 부재와 자신도 곧 어린아이가 되어버릴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이틀 내리 밤을 새운 특수 2기 사령탑 지우스는 무사히 작전을 속행할 수 있을 것인가?

 “...전혀 정리된 것 같지 않군.”

 돌아와서 단 어린아이 세 명으로 인해 비롯된 참상을 본 지우스의 평가였다. 피도란스는 2시간 넘게 대련 중인데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견습들은 돌아가면서 피도란스를 상대하고 있었는데, 아이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얻어맞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미 뮤사, 투리순, 다리곤이 체력 고갈로 쓰러진 상태였고, 파이멜과 루지안만이 비틀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서 있었다. 

 다랑은 와드린을 완전히 개조시켜서 타고 다니는 중이었다. 콰링과 지룬이 다음 개조 상대로 간택된 듯, 와드린을 발판 삼아 올라탄 다랑이 두 사람에게 특유의 기합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와드린은... 행복해 보였다.

 율니아와 눌진은 지우스를 도와 마을 근처까지 내려가서 사라진 루디카를 찾는 데 투입되었다. 1시간이 넘는 추격전 끝에, 루디카가 눌진을 상대로 정권 지르기를 하고 있는 현장을 지우스가 잡아냈다. 루디카는 지우스의 손에 대롱대롱 들린 채로 계속 파디를 찾아야 한다, 파디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견은 티르와 라우준, 마르샤를 지휘해 지쳐 쓰러진 견습들을 챙기면서 전체적인 상황을 감독 중이었다. 돌아온 지우스가 애처롭게 우는 루디카를 한 손에 들고 있는 걸 보며 나견이 물었다.

 “애를 울리신 건가요...?”
 “원래도 울보인 걸 모르고 하는 말인가?”
 “...나, 울보, 아니야...”
 “울지를 마라, 그럼.”

 지우스는 루디카의 말을 시니컬하게 받아쳤지만, 아이가 울고 있으니 어쩐지 자신이 쓰레기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아무튼.

 “상황은?”
 “개조된 사람이 하나, 체력 고갈로 쓰러진 견습이 셋... 아, 이젠 넷이네요.”

 나견이 말을 끝맺는 순간, 피도란스를 상대하던 파이멜이 풀썩 쓰러졌다. 나견이 손짓하자 티르가 그를 부축하러 얼른 달려갔다.

 “현장을 잠시 네게 맡겨도 되겠나?”
 “...저한테요?”
 “나는 새까만 닭을 찾으러 간다.”

 지우스가 기억하기로는, 어제 새까만 닭이 문제의 물통에 담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그야 평소에도 늘 투구를 쓰고 있으니 못 보는 게 당연하지만. 그러나 사상 지평을 쓰려는 움직임을 보였는데도 닭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분명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의미했다. 설마 새까만 닭도 어려져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든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지우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만약 정말 새까만 닭도 어려졌다면,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했다. 지우스가 주머니에서 카톤을 꺼내어 나견에게 건넸다.

 “루디카는 카톤으로 흰 사슴과 연락할 수 있게 해줘. 사슴이 직접 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거야. 웬만하면 잘 달래서 카톤으로 만족할 수 있게 해라. 다른 쪽은... 잘하고 있는 것 같으니,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부상자가 나오지 않게 잘 감독하도록. 이상.”

 그러고는 순식간에 뛰어 가버리는 지우스였다. 나견이 카톤을 한 손에 든 채로 멀거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인간 평소에는 터벅터벅 걸어 다니더니 왜 지금만 이렇게 빠르지? 설마 나한테 이걸 다 떠넘기려고...

 그걸 깨달아 봤자 이미 지우스는 사라지고 없었다.





 지우스는 단서도 없이 새까만 닭을 찾아서 온 숲을 배회했다. 어려진 새까만 닭이라면 어디로 갔을까. 생각해라 지우스. 생각하는 거야... 그러나 지우스가 알고 있는 새까만 닭의 편린은 오직 어른일 때의 모습뿐. 어린 새까만 닭의 생각을 머리 좀 굴린다고 알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점점 눈앞에 노이즈가 끼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잠을 못 잔 거지? 이제는 그런 간단한 계산도 힘들었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은 순간,

 저 멀리서 간절히 찾아다니던 투구와 붉은 끈이 보였다.

 한 손에 론누를 들고 있었고, 투구도 제대로 쓰고 있는... 흐릿하게만 보였지만, 확실히 다섯 살 어린아이의 모습은 아니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넌 어려지지 않았구나. 지우스는 떨리는 다리로 겨우 새까만 닭의 앞까지 도달한 뒤, 주머니에서 작게 접은 쪽지를 꺼내어 닭의 손에 쥐여주고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뭐야?”

 웬 초록색 머리의 남자가 갑자기 비틀비틀 걸어와서는 쪽지 같은 걸 건네고는 바로 쓰러져 버렸다. 그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소녀는 줄곧 쓰고 있던 투구를 벗었다. 열 살이 조금 넘었을까 싶은, 앳된 얼굴의 회색 머리 소녀가 머리를 좌우로 붕붕 흔들었다. 아, 이거 생각보다 영 답답하네. 잠에서 깬 이후로 어쩐지 투구를 쓰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아서 계속 쓰고 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저씨, 일어나 봐. 이거 뭐야? 나 알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회색 머리의 소녀는 일단 그가 준 쪽지를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새까만 닭에게 ― 긴급상황 필독.
 여우, 승냥이, 너구리가 모두 어려졌어. 견습들이 감독 중이다.
 그리고 나도 곧 어려질 거야. 다행히 한숨 자고 일어나면 돌아온다고 하더군.
 그러니 내가 휴식에 들어가면 곧바로 깨운 뒤 적당히 기절시켜 줘.
 그래야 최대한 빨리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다.

 “이게 뭔 소리야?”

 하나같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뿐이었다. 여우? 승냥이? 너구리? 어려졌다고? 이게 무슨 말인데. 이 정체불명의 쪽지에서 소녀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 쪽지는 ‘새까만 닭’에게 가야 할 쪽지라는 것.

 그리고 그 ‘새까만 닭’이, 지금 소녀가 찾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의 이름마저도. 그저 외롭고, 춥고, 배고팠던, 그런 쓸쓸한 감각들뿐. 그런 어렴풋한 느낌만이 소녀의 몸에 새겨져 있었다. 별로 자세히 기억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로, 기를 쓰고 기억해 내고 싶은 따뜻한 기억도 있었다. 잘 떠오르지는 않지만, 기억을 가득 채운 쓸쓸함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밝게 빛나는 기억. 갈색 머리의, 누군가와 함께했던... 그리고 그 기억의 중심에, ‘와론’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새까만 닭’이라는 이상한 별명에서도 ‘와론’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소녀는 와론을 찾아야 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저씨, 와론이 어디 있는지 알아?”

 소녀는 쪽지에서 시선을 떼며 그렇게 물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아저씨’가 아니었다. 아까 그 사람과 같은 초록색 머리였지만,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아이가 바닥에 누워서 꼬물거리고 있었다.





 “야, 일어나 봐! 이거 뭔데! 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저씨였잖아! 너 뭐야?”
 “...와론?”
 “그래! 와론! 너 와론을 알아? 역시 너 뭔가 알고 있지?”

 회색 머리 소녀는 초록색 머리를 한 아이의 어깨를 붙잡고 거듭 물어보았지만, 아이는 딱 한 번 와론, 이라고 말하고는 계속 모른다는 듯 고개만 짤짤 흔들었다. 하, 마음 같아서는 어깨를 붙잡고 짤짤 흔들면서 추궁하고 싶은데. 애니까 참아야지. 소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일단 이 쪽지를 와론에게 가져가야 하는 것 같은데... 와론이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쪽지를 다시 들여다보자, 아까는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도 곧 어려질 거야. 다행히 한숨 자고 일어나면 돌아온다고 하더군.
 그러니 내가 휴식에 들어가면 곧바로 깨운 뒤 적당히 기절시켜 줘.

 “어려졌는데... 한숨 자고 일어나면 돌아온다고?”

 그러니까 깨운 다음에 기절시켜 달라고? 얼떨결에 바로 깨우는 것까지는 해버린 소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를 돌아보았다. 사람을 기절시키는 방법에는 전통적으로 목 뒤를 세게 쳐서 의식을 잃게 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렇지만,

 “...나, 뭐, 잘못했어?”

 아이가 조금 겁먹은 듯, 소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 미쳤어? 아무리 그래도 어린애를 때려서 기절시키라고? 게다가 이런 짓을 와론한테 시키려 들었다고? 장난하나. 소녀가 아이의 불안한 시선을 외면하며 답했다.

 “...아냐, 됐어. 꼬맹이 니가 뭔 잘못이 있겠냐... 아까 그 아저씨 잘못이지 뭐...”
 “누난 누구야?”
 “나도 몰라. 넌 누군데?”
 “나... 지우스.”
 “허, 넌 이름이라도 기억하네. 좋겠다.”
 “누나는 자기 이름 몰라?”
 “어~ 몰라. 별로 중요하지도 않을 거야.”
 “왜?”

 아씨, 묻지마 임마. 하여튼 애들이란 궁금하면 아주 다 물어보고 난리야. 소녀가 투덜거리고는 쪽지를 대충 주머니에 구겨 넣고 휙 돌아섰다. 들고 있던 창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이렇게 들고 다녀도 되나 싶었지만, 땅에 안 끌리게 들고 다니려니 너무 무거워서 팔이 저렸다. 그렇다고 안 들고 다니기에는... 어른들은 무기도 없이 혼자 다니는 아이에게 친절하지 않으니까.

 “야~ 꼬맹이, 거기 딱 있어! 나 와론 찾아서 올 테니까.”
 “...응.”

 당연히 따라오겠다고 떼쓸 줄 알았는데. 아이는 의외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착하네. 회색 머리 소녀가 씩씩하게 창을 든 채로, 아이를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소녀가 창을 들고 낑낑거리며 세 걸음 걷고는 뒤돌아보았다. 아이는 그대로 잘 있었다.

 “얌전히 잘 있어! 이상한 사람 따라가지 말고.”
 “응.”

 소녀가 다시 다섯 걸음 걷고는 뒤돌아보았다. 아이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잘 있었다.

 “막 돌아다니지도 말고! 세상 험하니까. 길 잃으면 너 못 찾아.”
 “응.”

 소녀가 다시 일곱 걸음 걷고는 뒤돌아보았다. 아이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잘 있었다.

 “...너 진짜 혼자 잘 있을 수 있냐? 곧 어두워지는데.”
 “응.”

 소녀가 다시 아홉 걸음 걷고는...

 “...에~ 이씨 진짜!”





 한편, 나견 쪽은 상황이 점점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흰 사슴 파디얀은 루디카가 어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날아왔다. 오자마자 루디는 어디 있어? 하고 묻더니, 어려진 루디카를 보고는 온 사방팔방에서 요리조리 살피고, 목말을 태워주고, 비행기를 태워주고, 아무튼 야무지게 잘 놀아주고 있었다. 루디카는 파디얀을 보자마자 눈물을 한 2리터쯤 쏟더니, 어느새 눈물을 뚝 그치고 신나게 노는 중이었다.

 파디얀이 루디카와 너무 재밌게 놀아준 나머지, 다랑마저도 콰링과 지룬의 개조를 포기하고 그쪽에 붙었다. 파디얀이 기사의 체력을 한껏 발휘하여 양팔에 루디카와 다랑을 끼고 고속으로 뛰어다니며 비행기 놀이를 시켜준 덕분에, 콰링과 지룬은 개조 직전에 해방될 수 있었다. 와드린은 이미 개조가 완료된 상황이라 구할 수 없었다. 그는 또다시 딸을 빼앗긴 표정으로 파디얀과 신나게 놀고 있는 다랑을 눈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피도란스와 루지안은 석양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대화 중이었다. 견습 총 넷을 체력 고갈로 쓰러뜨린 피도란스는 마지막으로 루지안까지 격파하고 쉴 생각이었지만, 루지안은 쓰러지고도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며 버텼다. 두 사람 다 지칠 대로 지친 상황, 결국 해가 질 때쯤이 되어서야 둘은 동시에 잔디 위로 쓰러졌고, 함께 한바탕 웃으며 서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여름이었다.

 그렇게 파디얀과 루지안의 맹활약으로 드디어 루디카, 다랑, 피도란스를 모두 재우는 데 성공했다. 파디얀이 오래간만에 운동 제대로 했다며 땀을 닦고는 나견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기린은 왜 안 와?”
 “새까만 닭님을 찾으러 간다고 하셨는데...”
 “곧 어두워질 텐데... 아무래도 찾으러 가봐야겠네. 상태 괜찮은 견습 몇 데리고 수색조를 꾸려. 한 서너 명 정도? 이쪽은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카톤 하고.”

 그렇게 해서 나견은 티르, 라우준, 마르샤와 함께 지우스와 와론을 찾으러 나서게 되었다. 오늘 하루가 참 길다... 나견이 슬슬 뻐근한 팔을 주무르며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꼬맹이, 너 아까 아저씨일 때 기억 진짜 안 나냐?”
 “아저씨?”
 “안 나나 보네~ 에휴. 진짜 이게 무슨 일이냐? 옷도 무거워 죽겠고.”
 “옷이 무거워?”
 “어. 이거 와론 옷인 것 같은데... 근데 왜 내가 이걸 입고 있지?”
 “와론이 누군데?”
 “있어, 아주~ 아주 멋지고 착한 사람! 우린 그 사람 찾으러 가는 거야.”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해가 지는 동안, 회색 머리 소녀가 앞서서 걷고, 초록 머리 아이가 뒤따라갔다. 창은 옆으로 눕혀서 앞서가는 소녀가 창 쪽을 들었고, 뒤따라오는 아이가 손잡이 쪽을 든 채로 함께 운반 중이었다. 소녀는 혼자 들어도 괜찮다고 했지만, 역시 백지장이라도 맞드니까 훨씬 나았다. 백지장이라기엔 좀 많이 무거웠지만.

 초록 머리 꼬마는 아이치고 굉장히 얌전한 편이었지만, 대신 궁금한 게 많았다. 귀찮은 일이었지만, 소녀는 그래도 최대한 대답해 주려고 했다. 그 무엇도 아닌 와론에 대한 질문이니만큼, 대답하는 게 지루하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와론 아닌 사람과 하는 즐거운 대화였다.

 “와론은 착한 사람이야?”
 “응. 나한테 처음 다가와 줬어.”
 “착하고 멋진 사람?”
 “응. 나보고 재능이 있다고 해 줬어. 와론에 비하면 별거 아닌데...”
 “누나 친구야?”
 “응, 친구야.”
 “근데 얼마나 더 걸어야 돼?”
 “그걸 모르겠어서 미치는 거지. 왜, 힘드냐?”
 “...조금? 아, 아니, 괜찮아. 더 걸을 수 있어.”
 “뻥치고 있네~ 땀 흘리는 거 다 보인다, 야. 조금 쉬었다 가자.”
 “그래도 돼?”
 “어, 임마. 조금 쉰다고 내가 너 버리고 가겠냐? 걱정마. 어쩌면 와론이 먼저 찾으러 올지도 몰라.”
 “그랬으면 좋겠다...”
 “...나도. 와론 보고 싶어.”

 밤이 되니 기온이 제법 쌀쌀했다. 커다란 나무 밑동에 자리를 잡은 소녀가 망토를 벗어서 아이에게 덮어주었다. 아이가 망토 절반쯤을 다시 소녀에게 양보했다.

 “야, 됐어, 나 추위 안 타.”
 “...뻥치고 있네.”
 “...너 그런 말 어디서... 아, 나구나.”

 결국 사이 좋게 망토를 나누어 덮고, 두 아이는 차츰 잠에 빠져들었다. 잠들기 직전, 소녀는 하품을 하면서 생각했다. 자고 일어나면... 와론이 돌아와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 날, 지우스와 와론은 약 30분 정도의 시간 격차를 두고 따로 돌아왔다. 푹 자고 일어나서 어른으로 돌아온 피도란스, 다랑, 루디카와 달리 두 사람은 썩 잘 잔 듯한 표정은 아니었다. 물론 가장 억울한 사람은 두 사람 찾는다고 숲을 다 뒤지고 다니느라 한숨도 못 잔 수색조였지만.

 “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미안하군. 나도 기억이 안 나서. 일어나 보니 숲 한가운데 혼자 있더군.”
 “어려졌을 때 기억은 안 나시는 거예요?”
 “전혀.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새까만 닭을 만난 기억은 있는데...”

 그 말을 들은 나견이 와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즉시 뭐 어쩌라고, 하는 듯한 와론의 시선이 돌아왔다. 나견은 기죽지 않고 물었다. 아무래도 지우스에게 하듯이 따지고 드는 건 불가능했지만.

 “닭님은 그럼 멀쩡하셨던 건가요?”
 “어, 뭐.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왜 자리를 비우셨던 거죠?”
 “뭐. 나는 혼자만의 시간 좀 가지면 안 되냐? 이거 어이없는 놈이네.”

 됐다. 이 인간들한테서 뭘 기대한 내가 바보지. 나견이 또 속으로 한숨을 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밤을 새운 머리가 가볍게 지끈거렸다. 최근 지우스가 자기 일을 나견에게 자주 떠넘기고 있어서인지, 지우스의 버릇이 하나둘씩 옮겨오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마침 지우스가 무려 하루나 늦어졌다며 작전 지시 사항을 하달하는 중이었기에, 나견은 앞날을 걱정하기 위해서라도 억울함을 빠르게 가라앉히고 지우스의 말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날 하루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지나갔고, 어쨌든 기사들도 모두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 사건이 더 이상 언급되는 일은 없었다.

 새까만 닭 와론만이 몇 분 정도 지우스를 응시하다가 말없이 시선을 돌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