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불의 기사

지우와론

약님 2025. 2. 13. 15:50

 

 비가 내린다.

 날씨 좋구만. 새까만 닭이 말했다.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했다.

 지우스는 동의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기다림에 익숙하다. 새까만 닭― 싸움을 좋아하는 기사라는― 세간의 인식에 어울리지 않게도.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가 있다. 생각 외로 많은 상황에서. 그때는 그런 때였다. 기다려야 할 때와 행동해야 할 때를 아는 것 또한 기사의 자질 중 하나.

 춥나? ―지우스가 말했다. 모닥불을 피울 만한 곳이 없다. 춥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해도 딱히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걱정의 모양새를 한, 아무 의미 없는 말 한마디. 그것이 그들 사이에 오갈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였다.

 아니. ―새까만 닭이 받아쳤다. 예상대로의 답변을 들은 지우스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것은 그가 처음으로 사랑을 자각한 날에 관한 이야기다.





 새까만 닭의 목걸이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한 것은 꽤 최근의 일이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지우스는 닭이 목에 목걸이를 걸었든 수류탄을 걸었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 눈길이 닿은 것은 목걸이가 아닌, 검은색 반장갑을 낀 손. 그 손이, 마치 그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도 되는 듯이 목걸이를 어루만지고 있는 것을, 그는 보고야 말았다.

 그렇군. 저것은 새까만 닭이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군. 처음의 감상은 그랬다. 그 새까만 닭이? 소중함이 뭔지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새까만 닭이? ···이제 와서 굳이 애처럼, 그런 사실에 일일이 놀랄 것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은 있기 마련이라. 새까만 닭이라고 해서, 그런 대상이 없을 것이라 생각할 이유는 없지.

 뭐가 됐든 무언가를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은 아름다운 인간이지. 지우스는 그 사실을 이해했다. 세상사란 무엇인가. 일을 하고, 재산을 모으고, 가정을 꾸리고, 그 모든 일의 근간에 있는 감정은 사랑일 터였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매일 어딘가로 모였다가 흩어졌다. 지우스는 그 사실을 이해했다.

 그리고 지우스는 그런 삶과는 거리가 꽤 멀었다.

 그는 딱히 스스로 어딘가 결여된 채로 태어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기사질을 하는 이유는 강한 힘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그래서 그는 기사를 해야만 했다. 그러자 어쩐지 더 큰 힘이 손에 쥐어졌다. 더 큰 책임이 어깨를 내리눌렀다. 책임, 책임, 책임··· 그의 원동력은 단 하나, 그가 자랄수록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나는 책임감이었다.

 야.

 난데없이 새까만 닭이 불렀다.

 응.

 그는 대답했다. 한 글자짜리 부름에는 두 글자 이상으로 대답해야 할 책임이 따르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너도 써놨냐. 유서 같은 거.
 아니.
 왜? 기사란 놈들은 다들 써놓던데.
 너도 안 써놨잖아.

 그 말에 새까만 닭이 허허, 하고 웃었다. 지우스는 새까만 닭을 그렇게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 웃음에 담긴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방금 웃음의 뜻은, 이 새끼 봐라, 정도.

 기사질하다 보면 언제 죽을지 모를 텐데?
 ···유서는 남은 사람을 위한 거니까.

 내 유서를 읽게 하고 싶은 사람이 딱히 없어서. 지우스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유서를 쓰는 상상은 해본 적 있다. 드넓은 백지 앞에서, 그는 펜을 손에 쥔 채로 몇 시간이고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상상이지만, 아마 실제로 펜을 든다 한들 달리 쓸 말은 없을 것이다. 

 만약 죽는다면, 나는 자살할 거야.

 주위가 묘지처럼 고요하지 않았다면 놓쳤을 법한 중얼거림이었다. 지우스는 그 순간 움찔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뭐? 라든가, 그런 얼빠진 반문을 하지 않기 위해서도. 가랑비는 사람을 괜히 감성적이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가끔 말할 생각 없었던 속내가 불쑥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머리에서 나오는 말이 아닌, 심장에서 나오는 말이.

 그러나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주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새까만 닭의 연약한 속내는 금세 이성을 되찾은 듯 저 심장 깊숙한 곳으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러나 그 아주 잠깐의 틈새를 본 지우스는 처음으로, 새까만 닭의 투구 속에는 저와 같은 인간의 얼굴이 있음을 인지했다.

 왜인지 속이 울렁거렸다. 죽음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살아 있는 생물로서, 죽음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감인가. 죽음을 생각하면 속이 거북해지는 게 당연한 건가. 제 죽음에 대한 반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주제는 새까만 닭의,

 새까만 닭이,

 죽는다면, 나는 슬플 거야.

 새까만 닭이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빌어먹을 가랑비. 지우스와 달리, 와론은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하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았다. 지우스가 계속 지껄거리든 거기서 끊어버리든 아무 상관 없다는 듯이. 지우스는 투구 안에서 눈을 깜빡거리는 와론의 표정을 얼추 그려볼 수 있었다. 상상 속 와론의 눈동자는 색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야, 무슨 색인지 모르니까.

 채우고 싶었다.

 순간, 지우스는 토기가 올라오려는 걸 참으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구역질이 났다. 벌레가 온몸을 타고 기어가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이어졌다. 이것은 그답지 않았다. 가랑비가 더 오래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날씨 좋다, 는 말에 불쑥 동의하고 싶어지는 것은.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왜 지금까지 몰랐는지는.

 아마도, 그전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빌어먹을 가랑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