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스독

쌍흑

약님 2025. 3. 9. 12:59


 녀석과 함께(윽) 보낸 첫 여름은 끔찍하게 더웠다. 어쩌면 마음에 안 드는 놈과 같이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8월이 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유난히 푹푹 찌는 날. 곧 죽어도 정장 차림으로 나다니는 그놈은 더위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원래도 이상한 말, 이상한 행동 자주 하는 놈이었다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없었다. 그때는, 좀. 그놈 꼴을 보자면, 다행히 코트는 벗었다지만, 보기만 해도 답답한 정장에,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온몸에 친친 감긴 붕대까지. 더위? 흠, 난 그런 거 안 타는데~ 이런 헛소리를 지껄인 지가 벌써 세 시간― 그놈, 다자이는, 어쩐지 조금 작아진 것도 같았다. 설마 녹았나?

 그때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마른 풀밭 위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서 만담에 가까운 말들을 주고받곤 했다. 놈과의 사이에서 뭐라도 오갔다는 게 기분 나쁘긴 하지만, 어쨌든, 그 대화는 가만 들어보자면 첫째로는 어이없고 가끔은 제법 웃기기도 한, 뭐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풀밭보다 고지대에 있는 자전거 도로, 철없는 어린애들이 거길 지나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뒤에 깔렸다.

 ···더워, 아이스크림 먹자··· 네가 쏘는 거야?···

 츄야, 자살하기 나쁜 날씨야. 이런 날씨에는 투신을 해도 땅에 붙어서 녹아버릴 거야. 그럼 그건 추락사로 쳐야 하나, 뭘로 쳐야 하나? 사람이 더위에 녹아서 죽은 사례가 있나? 물론, 있겠지?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죽음이 존재하니까. 그렇게 많은 죽음이 있는데도, 내 죽음 하나가 없어··· 슬픈 세상이지, 츄야.

 얼간이 다자이, 네놈은 그 지긋지긋한 자살 타령을 빼면 말을 할 수 없는 거냐.

 ···돈 없어··· 내기할래? 저어―기까지 늦게 도착하는 사람이···

 츄야, 그거 알아? 이 여름은 우리가 앞으로 살면서 겪을 여름 중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던데. 웃기지 않나? 그런 말이 퍼지면 여름이 가기 전에 집단 자살 사건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놀라워! 살고자 하는 의욕이, 있지도 않았지만, 더한층 없어졌잖아? 아, 집단 자살이라. 역시 최고는 둘이 함께하는 동반 자살이지만, 집단으로 우수수 죽어버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 제법 볼만하겠지, 그렇지?

 누군가 자살 사유를 물었을 때, 그럼 네놈은 더워서, 라고 대답할 작정인가?

 ···셋, 둘, 하나, 준비··· 어이, 먼저 가지 마!···

 더워서! 좋은 자살 사유가 아닌가? 그렇지만 만약 정말로,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더워서라기보단― 춥지 않아서, 라고 대답하겠어··· 자살하려는 이유도, 죽고 싶어서보다는, 살고 싶지 않아서잖아. 그렇지 않나? 무언가가 좋아서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싫어서, 너무나도 싫어서, 그걸 피하려는 움직임이지! 그리고 나는 자네가 싫어. 어쩌지? 그렇지만 일어나서 다른 데로 갈 기력이 없고.

 제안 하나 하지. 주둥이를 좀 닥쳐볼 생각이 없나? 내 생각에, 다자이 네놈이 입만 좀 닥치고 있으면 둘 다 혼자 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만. 아, 젠장, 귀를 너무 혹사했나? 귀가 좀 따가운 것 같은데. 역시 네놈 헛소리는 유해 매체 1급이다.

 ···뛰지 마, 얘들아, 다칠라··· 얘! 나도 같이 가!···

 응? 이런 날씨에 따가운 감각이라니. 그거 안 좋은 신호인데! 츄야, 귀가 햇빛에 타들어 가서 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나? 물론 없겠지. 자네가 그렇게 죽고 나면 내가 써서 퍼뜨릴 이야기니까!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아니야.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그러나 작열통이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최악이라지··· 저런, 츄야,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겠구나. 내가 조의금은 백 엔 정도 내주지.

 제발 좀 닥쳐···

 와글와글 떠들던 아이들이 천천히 멀어져 간다. 그즈음 다자이 놈도 타이밍 좋게 입을 닥쳐준 덕분에, 풀밭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찾아왔나 싶더니, 곧 찌르르, 하는 풀벌레 소리. 솨아악, 불어오는 더운 바람에 짧은 풀들이 흔들리는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 사람 말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여름의 소리가 정적 위로 떠올랐다.

 아이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해가 기울고 있다. 붉은색인지, 주황색인지, 그 사이 어딘가의 색으로 빛나며, 서서히 풀밭을 다홍빛으로 물들이며··· 빌어먹을 더위는 그래도 여전히 한낮 같다. 슬슬 돌아갈 시간인가. 말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리 일 없는 날이라지만, 그래도 땡땡이가 너무 길어지면 곤란하겠지. 뜨겁게 익은 정수리 위로 모자가 툭, 내려앉았다.

 가는 건가, 츄야?
 어, 그래. 네놈 보기 싫어서 간다. 넌 나중에 들어와. 네놈이랑 같이 있었던 거 티 내기 싫으니까.
 수줍음이 많군. 가끔 보면 츄야는 참, 어린 여자아이 같아.
 ···죽인다, 진짜.

 어쨌든, 그날은 끔찍하게 더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여름을 제법 좋아한다. 마음에 안 드는 날씨. 마음에 안 드는 동료. 뭐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게 없었지만, 그 여름··· 다자이 그놈이랑, 함께 혼자 있었던 여름. 모르겠다. 그저 지나가고 나면 나쁘지 않게 기억되는 기억 보정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