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스독

오다자

약님 2025. 4. 24. 18:04


 0


 꿈에서 깨는 감각과 함께, 그의 시야가 붉은빛으로 점멸한다.

 

 


 1

 내가 너에게 가고 있어.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어.

 

 


 2

 다자이는 숨 가쁘게 계단을 오른다. 이 길의 끝에 네가 있다. 저 앞의 문은 조금 열린 채로 방치되어 있고. 문틈으로는 눈부신 붉은빛이 스며 나온다. 시간대는 저녁. 오늘은 노을이 무척 아름답게 펼쳐진 모양이다··· 그는 숨차하는 와중에도 문득, 그런 엉뚱한 생각을 떠올린다. 마침내 그는 목적지에 당도한다. 문 앞에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고르지 못한 호흡으로 너의 이름을 부른다. 오다 사쿠―

 

 

 

 3

 드디어 내가 여기까지 왔어. 너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어.

 흔한 이야기다. 다자이 오사무는 뒤늦게 죽도록 뛰어서 현장에 도착했지만, 끝내 친구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답니다! 지켜보는 관객이 있다면, 지루하다고 하품이라도 할 법한. 배우들만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안고, 그들만이 눈물을 뽑는 신파극··· 흔히 활용되는 소재는 죽음이고. 죽어가는 친구는 마지막 기력을 쥐어 짜내 유언 몇 마디를 내뱉는다. 그 몇 마디는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일종의 이정표이자 저주가 되어···

 

 오다 사쿠,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 속에서도, 그는 할 수밖에 없다.

 

 

 

 4

 연극은 끝났다.

 다자이는 시선을 멍하니 옆으로 돌린다. 시선이 가 닿은 곳은 우연히도 서쪽이라. 어느새 사위가 붉게 물들어 있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는 걷기 시작한다. 머릿속에 어렴풋이 떠올린 목적지가 있음에도, 발 가는 대로 걷는 사람의 모양으로 허청허청 걷는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그의 목적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어쩌면 애초에,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어느 고층 빌딩 앞에서, 그의 발걸음이 멎는다. 그는 숨을 고르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5

 차들의 경적과 엔진 소리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귓가를 간지럽히는 거리의 바람 소리

 네가 지키고자 했던, 아름다운 요코하마의 거리

 



 6

 다자이는 그 모든 것에서 딱히 의미를 찾지 못했다. 오다 사쿠라면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에게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어쩌면 그는 태생부터 글러먹은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는 전철역을 찾아 들어간다. 어딘가로 향하는 급행열차가 들어오는 중이라고 한다. 그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열차를 잡아탄다. 덜컹덜컹, 하는 적막한 소음이 몇 분간 계속된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전철이 약간의 반동과 함께 멈추어 선다. 이번 역은, OO역입니다··· 꾸벅꾸벅 졸다가 일어나는 사람.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다가 고개를 드는 사람. 혹은 그러든지 말든지, 제 할 일에나 계속 몰두하는 사람.

 문이 열린다.

 사람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사라진다. 역의 출구는 총 아홉 개. 바깥으로 향하는 아홉 개의 구멍이 각지에서 사람들을 뱉어낼 것이다. 구멍에서 기어 나온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사라진다.

 어느 거리로

 바람이 부는 저 거리로

 그는 그들 모두와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7

 오다 사쿠의 죽음 이후로 시간이 꽤 흘렀다.

 다자이는 그 시간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친구의 유언대로, 사람을 돕는 일에 뛰어들었다. 가끔은 제 자신이 마치 연극에 참여한 배우 같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람을 구하고자,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구하면서 살았다. 

 

 


 8

 그의 삶은 이어질 것이다. 억지로 끊어내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

 

심심하신 분들은 8번부터 역순으로 다시 읽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