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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자문스독 2025. 4. 24. 18:04
0 꿈에서 깨는 감각과 함께, 그의 시야가 붉은빛으로 점멸한다. 1 내가 너에게 가고 있어.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어. 2 다자이는 숨 가쁘게 계단을 오른다. 이 길의 끝에 네가 있다. 저 앞의 문은 조금 열린 채로 방치되어 있고. 문틈으로는 눈부신 붉은빛이 스며 나온다. 시간대는 저녁. 오늘은 노을이 무척 아름답게 펼쳐진 모양이다··· 그는 숨차하는 와중에도 문득, 그런 엉뚱한 생각을 떠올린다. 마침내 그는 목적지에 당도한다. 문 앞에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고르지 못한 호흡으로 너의 이름을 부른다. 오다 사쿠― 3 드디어 내가 여기까지 왔어. 너를 만나러 여기까지 왔어. 흔한 이야기다. 다자이 오사무는 뒤늦게 죽도록 뛰어서 현장에 도착했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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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커미션 2025. 4. 19. 00:08
*커미션 작업물 - 도시의 이면. 쓰레기와 낙엽이 굴러다니는 어두운 뒷골목. 빛의 사회에서 추방된 이들― 걸인과 매춘부, 도박꾼, 빚쟁이, 부모 잃은 가난한 아이들. 온갖 일이 다 일어나는 슬럼가였으나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공식적으로, 황실에서 인정하는 범죄 축에도 들지 못했다. 무법의 거리. 명예를 수호하는 기사들마저도 이곳을 전장으로 삼지 않았다.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기사들에게, 사람 냄새로 가득한 이곳은 최악의 무대였다. 그렇기에 오히려,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실력자들은 이곳을 주 무대로 활동하곤 했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실력자들만이 세상의 다는 아니라. 자유기사란 이름을 달고 있는 자들마저도 이름이 있는 한, 그들은 빛의 세계에 속한 것으로 취급된다. 진짜 어둠 속의 실력자들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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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글내문] 해가 잘 드는 언덕잔불의 기사 2025. 4. 12. 14:53
트친 글 내 문체로 쓰기원문 링크: https://www.postype.com/@bbiyan--0/post/14831172 해가 잘 드는 언덕: 단하나야, 기린.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네가 하려는 말을 직감했다. 한바탕 폭우가 쏟아진 뒤에도, 구름이 잔뜩 껴 흐린 날이었다. 나는 욱씬거리는 팔을 애써 모른 채 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회색 머www.postype.com 이 글을 단독(@dandokk0)님께 바칩니다. - 기린. ―과장스레 톤을 올리던 평소와는 다른, 낮게 깔린 목소리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 ―이것 외에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었겠는가. 새까만 닭이 은퇴했다. 기사사냥꾼은 사라지고, 그런 존재가 있었다는 소문만이 남았다. 대부분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많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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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가 죽은 날문스독 2025. 4. 4. 18:07
“···3개월 정도 남았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의사는 차마 못 할 말을 한다는 듯(그러나 오늘이 그와의 첫 대면임을 생각해 볼 때, 그가 다자이의 죽음을 그리 안타깝게 생각한다기보다는, 갑자기 다자이가 벌떡 일어나서 그게 무슨 소리냐며 명패로 자기 머리를 박살 낼지도 모르는 상황을 경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떨떠름한 어조로 조심스럽게, 숙달된 어색함을 흉내 내며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자이가 뭐라고 답했느냐 하면, “드디어 제 소원이 이루어졌군요!” 그는 어린이날 선물을 한아름 받은 아이처럼 맑게 웃었습니다. 그래요, 다자이 씨. 좋은 기회가 찾아왔군요. 비록 3개월이나 이 가치 없는 삶을 지속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 지루한 기간이 끝나면 드디어 그곳에 갈 수 있겠지요. 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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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쌍흑문스독 2025. 3. 30. 16:36
아쿠타가와는 거리를 걷는다. 횡단보도 앞에서 걸음이 멈춘다. 신호등―가만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 흐린 밝기로 빛나다가 툭, 꺼진다. 바로 아래, 걸어가는 자세의 사람 모습이 희미하게 빛남과 거의 동시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쿠타가와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홀로 남았다. 반대쪽에서 걸어온 사람들이 아쿠타가와를 흘깃 쳐다보며 제 길을 마저 걷는다. 신호등은 다시 툭―(실상은, 그런 가벼운 소음도 없이) 바뀌고, 아쿠타가와는 선 채로 그것을 응시한다. 신호등의 붉은색과 초록색 낮과 황혼, 밤의 하늘색 그 사람의 눈동자 색 그 모든 것이 아쿠타가와의 황폐한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희미한 감각으로만 남아 있었다. 시작은 일주일 전 즈음부터였다. 아쿠타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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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 목주와론커미션 2025. 3. 17. 15:40
하루를 돌아보자.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리 생각했다. 첫째 아침에 눈을 뜬 순간을 기억합니다. 시간상으로 따지자면,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아침은 아닌 것도 같습니다. 오전 10시. 이 시간을 뭐라 정의해야 할까요. 오전 10시에 밥을 먹으면 그건 아침이라고 해야 할까요, 점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세간에는 브런치, 라는, 언뜻 들으면 고급스러워 보이는 표현도 있는 듯하지만 어쨌든 그것은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핵심은 그 시간에 눈을 떴다는 사실이겠습니다. 그 시간에 눈을 떴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었지요. 평소에 눈을 뜨던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늦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몸의 상태와 연관 짓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어, 하고 문득 머릿속에 그런 비슷한 가능성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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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흑문스독 2025. 3. 9. 12:59
녀석과 함께(윽) 보낸 첫 여름은 끔찍하게 더웠다. 어쩌면 마음에 안 드는 놈과 같이 있어서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8월이 다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유난히 푹푹 찌는 날. 곧 죽어도 정장 차림으로 나다니는 그놈은 더위에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원래도 이상한 말, 이상한 행동 자주 하는 놈이었다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없었다. 그때는, 좀. 그놈 꼴을 보자면, 다행히 코트는 벗었다지만, 보기만 해도 답답한 정장에, 뭣 때문인지는 몰라도 온몸에 친친 감긴 붕대까지. 더위? 흠, 난 그런 거 안 타는데~ 이런 헛소리를 지껄인 지가 벌써 세 시간― 그놈, 다자이는, 어쩐지 조금 작아진 것도 같았다. 설마 녹았나? 그때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마른 풀밭 위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서 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