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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다자
    문스독 2025. 3. 6. 22:18


     집은 기분 나쁠 정도로 완벽하게 깨끗했다. 거의 새것인 가구. 바닥에는 흔한 얼룩도 없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 한 톨, 정도나 느리게 공중을 떠다니다가 시야 밖으로 곧 모습을 감췄다. 어디에선가는 심지어 은은한 장미향이 감도는 것도 같았다.

     다자이는 오늘도 욕실에 있을 것이었다. 최근 며칠간은 늘 그랬으니까. 

     오다는 욕실 문을 열었다. 생각한 대로, 다자이가 있었다. 욕조는 크지 않았다. 성인 남성 한 명이 몸을 누이기에도 좁은 크기. 물이 흘러넘치는 좁은 욕조에, 팔다리를 욕조 밖에 아무렇게나 낸 채로 몸을 담그고― 손목에는 얇고 붉은 선이. 거기서 새어 나온 피가 물 위로 옅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붉은 물감에 담갔던 붓을 물에 씻을 때처럼. 오다의 시선을 의식하자 다자이는 고개만 돌려서 그를 보고 웃어 보였다. 욕실 바닥에는 시든 장미꽃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장미향의 출처는 여기인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다자이는 죽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전에도 자살, 자살 노래를 부르는 게 그의 습관이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행동에 옮긴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오다는 그를 말리거나 막지는 않았다. 억지로 막는 것이 다자이에게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니까. 그 대신 다자이가 죽음에 가까워지면 그는 다자이를 치료했다. 죽음에서 건져냈다. 다자이는 성공할 뻔한 자살을 무산시킨 오다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 나도 해볼까, 자살.
     - 왜?
     - 네가 맨날 하니까.
     - 자네가 죽으면 난 슬플 텐데.

     그 말을 시작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지 횡설수설하는 다자이의 팔 아래로, 오다는 손을 넣어 그의 몸을 일으켰다. 늘 입는 검은 정장과 코트가 물에 푹 젖어서 제법 무거웠다. 오다가 오기 전까지 피를 제법 많이 흘렸던지, 다자이는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안색이 창백했다.

     - 이번엔 거의 성공할 뻔했네.
     - 그렇지. 자네가 오지 않았더라면?

     그러나 오다는 다자이가, 자신이 오는 시간에 맞춰 일을 벌였음을 알고 있었다. 오다가 집에 도착해서 바로 상황을 수습한다면 자살 미수로 그칠 수 있게끔. 그리고 오다는 상황을 수습했다. 그 행위에 대해 전혀 불만은 없었다. 의문도 없었다. 죽기 직전인 사람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게 다자이건 아니건.

     다자이가 갑자기 자살 타령을 행동에 옮기게 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최근 행적을 나름대로 찾아봤으나, 별다른 특이점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물론 말단 조직원이 간부에 대해 조사를 해봤자 한계가 있는 게 당연했지만, 오다는 특별한 트리거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 추측했다.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서 죽고 싶어하기도 하지만, 아무 일도 없어서 죽고 싶어하기도 하니까.

     다자이의 경우라면 후자일 것이다. 죽음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삶에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 테다. 실제로 다자이는 그런 말을 하곤 했다― 괴로운 삶을 연장하면서까지 추구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통은 괴로운 삶, 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오다는 아무것도, 라는 말에 더 시선이 갔다. 어쩌면 그게 친구로서의 감인지도 모른다.

     삶이란 원래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는 괴로운 것이다. 다자이의 삶이라고 해서물론 다자이가 남들과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맞지만특별히 더 괴로운 삶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누구나 사정이 있고 다들 저마다의 괴로움을 간직하고 있으니까. 누구나 그 괴로움을 견디면 즐거움이 있을 것임을 희망하며 사는 것일 테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러나 즐거움은 절대로 오지 않는다, 라고 생각해버린다면 어떨까. 이 어린 마피아 간부는 고작 열여덟 살에, 그런 결론에 도달하고야 만 것이다. 살아봤자 즐거움은 끝내 오지 않는다고. 그러나 괴로움이 상대적인 감각이듯 즐거움도 상대적이라― 어쩌면, 다자이에게 있어 즐거움이란 그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일지도. 삶에서 발생하는 즐거움이 삶의 괴로움을 중화시킬 수 있다면, 최소한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저울의 양쪽 추에 올린 괴로움과 즐거움의 무게가 비슷해야 할 테다― 하지만 언제나 괴로움은 너무나 무겁고 즐거움이란 한없이 가볍지.

     다자이에게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다자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삶의 괴로움을 상쇄할 수 있을 만큼, 그가 좋아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오다는 알지 못했다. 다자이가 좋아하는 것이라. 자살? 그것밖에는···

     그러고 보니 다시 처음의 문제로 돌아와서, 다자이는 요즘 부쩍 자살 시도를 많이 하지 않았던가.

     - 다자이, 혹시 자살을 반복하면 기분이 좋아지나?
     - 음? 자살은 성공해야 기분이 좋지. 실패한 자살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 의미가 있지 않을까? 모든 일에는. 실패를 거름삼아···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을 거야.
     - 그건 혹시 위로인가? 엉망진창인걸. 자네는 확실히 위로에 재능이 없어.
     - 좀 별로인가?
     - 아니. 마음에 들어.

     다자이는 눈을 접으며 웃었다. 눈꺼풀이 닫히면서 그사이에 고여 있던 투명한 액체가 툭, 떨어졌다. 눈물의 이유는, 역시 모른다. 고통에 의한 생리적인 눈물인가. 아니면 다자이는 저도 모르는 슬픔을 느끼고 있는가. 다자이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슬퍼 보였다.

     어쨌든 오다는 욕조에서 다자이를 꺼내어 피가 흐르는 손목을 지혈하고 붕대를 새로 갈아줄 뿐이다. ···오늘 저녁은 카레 어때? 자네가 원한다면야. 얇디얇은 다자이의 손목을 계속 쥔 채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무방비한 상태로 일상적인 대화를 지속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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