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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디루디
    잔불의 기사 2024. 8. 11. 01:31


     흔히 만화 속 평화로운 아침에나 들려올 법한 참새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창문을 통해 들이친, 아침치고 상당히 강렬한 햇빛이 파디얀의 눈꺼풀을 마구 찔러댔다. 덕분에 오늘 아침은 누가 강제로 깨워서 일어난 듯한, 조금은 불쾌한 기상이 되었다. 오랜만에 알람도 안 맞춰두고 잔 날이었는데. 파디얀이 길게 하품했다. 그러면서 시원하게 기지개도 켤 생각이었지만, 파디얀의 왼쪽 팔을 루디카의 머리가 누르고 있었기에 오른쪽 팔만 어정쩡하게 들어서 펴야만 했다. 하나도 개운하지 않았다.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곤히 자는 루디카를 깨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파디얀은 팔이 저림의 한계를 맞이할 때까지는 루디카를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상황을 돌아보니, 루디카에게 팔만 눌려 있는 게 아니었다. 루디카의 두 다리는 곧게 뻗은 파디얀의 다리 위에 아무렇게나 얹어진 채였고, 루디카의 팔은 윗옷이 말려 올라간 탓에 드러나 있는 파디얀의 배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둘은 마구 뒤엉켜서 자고 있었다. 어젯밤 무얼 하다 잠들었기에 이 꼴인지, 파디얀은 어젯밤 기억을 돌이켜보았다. 오랜만의 휴가인 만큼 제대로 놀자며 치킨과 술을 사 왔고, 그래서 영화를 보며 술을 마셨고, 또 술을 마셨고... 그래, 술을 마셨지. 실컷 먹고 난 다음에는 상을 치우고 나란히 누워서 밤새 옛날이야기를 꽃피웠었고. 루디, 이러니까 우리 수학여행 온 것 같지 않아? 글쎄, 그런 거 안 가봐서... 모르겠네. 이런 기분인가?

     그럼 결국 아무 일도 없었고 잠자리에 들 때는 둘 다 바른 자세였는데 잠버릇 때문에 이렇게 뒤엉켰다는 거잖아. 파디얀이 자유로운 오른쪽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누가 보면 침대 위에서 결투라도 한 줄 알겠네.

     그러거나 말거나 루디카는 깰 기미도 없이 잘만 자고 있었다. 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너무 고요하게 자고 있어서, 파디얀은 풍성한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잘 갈무리한 뒤 루디카의 얼굴 위로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가까이 가서야 겨우 색색거리는 옅은 숨소리가 들렸다. 루디카의 코에서 나오는 약한 바람이 파디얀의 볼에 가 닿았다. 기분 좋은 간지러움이었다.

     곤히 자는 루디카를 가만히 지켜본 것도 꽤 옛날 일이다 싶어서, 파디얀은 루디카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조심스럽게 자세를 바로잡은 뒤 루디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곱게 감긴 두 눈은, 그 눈꺼풀 안에 샛노랗게 빛나는 눈동자가 숨겨져 있음을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얌전하게 감겨 있었다. 파디얀만큼 촘촘하지는 않지만 대신 속눈썹이 긴 루디카의 눈은 마치 잠든 공주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이 눈에서 그렇게 자주, 그렇게 많은 눈물이 흘러나온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신 눈가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눈물 자국만이 이 눈의 주인이 울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작고 아담한 코. 루디카는 코가 살짝 작은 편이었다. 안 그래도 피부가 하얀 편인데, 코끝에서 그 점이 특히 두드러졌다. 숨이 가지런히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작은 구멍들 바로 위의, 티 없이 곧게 뻗은 콧잔등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그 끝에 손가락을 톡, 얹어 보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이다.

     그러한 충동이 들기 전에, 파디얀의 시선은 황급히 그 아래로 내려왔다. 그 아래 더 강렬한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신체 부위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서.

     루디카는 입술에 뭔가 바르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나마 있는 물건이라곤 입술이 건조하면 피가 날 수도 있으니 파디얀이 쓰라고 권한 작은 립밤 하나뿐이었다. 그마저도 딱히 성실하게 바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루디카의 입술은 촉촉해 보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얼마 전 전투에서 입술이 찢어진 터라 막 아물기 시작한 상처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에 틈이라곤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굳게 앙다문 모양새.

     파디얀은 어느새 루디카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파디얀이 저도 모르는 새 조금씩 다가간 것이겠지만. 입술이란 참으로, 생각지도 못한 충동을 자극하는 부위라. 루디카의 입술에 난 상처를 보고 이성을 되찾지만 않았더라도, 파디얀은 분명 그 조그만 입술 위에 제 입술을 사용한 흔적을 남기고 말았으리라.

     루디카가 깰까 봐 조심스럽게 몸을 뒤로 물리기 전까지의 그 몇 초는, 파디얀의 욕망이 투명하게 드러난 사적인 순간이었기에 절대 루디카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고, 그렇기에 당연히 루디카는 딱 그 순간을 택해 눈을 떴다. 고작 손가락 두 마디의 여백을 사이에 두고, 하늘색 눈동자와 노란색 눈동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파디얀은 지금 몸을 뒤로 빼면 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잠시 고민했다. 앞으로 가는 것보다는 확실히 덜 이상하겠지만. 루디카는 상황 파악 중인 듯,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러나 아무리 잠이 덜 깬 상태라고는 해도 루디카는 기사였고, 루디카의 상황 파악은 아무리 늦어도 몇 초 안에 완료될 것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몇 초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팔다리가 뒤엉켜 있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했다. 더해서 자기 몸에 닿아 있는 상대의 몸에서, 기분 좋은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이 순간이 영원하길 내심 바라고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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